오래된 일기_다음블러그 썸네일형 리스트형 1980-02-10 1980년 02월 10일 일요일 1주일 뒤면 설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침에 소죽끼리는 큰 솥을 깨끗하게 씻고는 거기에 우리보고 샘물을 퍼다가 가득 채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와 그카는지 퍼뜩 알아차렸다. 설이 되기 전에 목욕을 시킬라꼬 그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이 겨울에 목욕을 자주 하는 것은 어렵다. 테레비를 보면 도시에는 넓은 탕에 뜨겁은 물이 가득 차있는 곳이 있고 그곳에 들어가서 천천히 때를 불리고 밖으로 나와도 찬바람을 막아 주는 곳이 있어서 춥지도 않게 앉아서 때를 밀 수 있는 목욕탕이 있다카는데 나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 우리는 겨울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까지도 목욕을 한다. 늦가을,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하고, 한 겨울 설이 오기 전에 또 한 번 그리고 봄이 오고 날이.. 더보기 1981-04-12 1981년 04월 12일 일요일 오늘은 일요일이다. 엄마가 하는 말을 빌리면 어제(토요일)는 방고일이고 오늘(일요일)은 온고일이다. 다시 말하면 오늘은 고일이다. 나는 이 말들이 우리의 옛날 말인지, 일본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듣기에 참 재미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동네의 고일 아침에는 다 같이 나와서 동네청소를 한다. 매주 고일 아침에 하지는 않지만 한 달에 한 두 번 하는 것 같다. 적어도 집에서 한 사람은 나와야 되고 필요하면 둘이 나올 수도 있다. 다만 아이들은 반드시 나와서 어른들이 하는 일을 거들거나 동네 신작로를 마당삐로 쓸고 쓰레기를 줍는 일을 한다. 아침 여덟 시가 되자 마을 앞 회관에 설치된 커다란 스피커에서 마을 대청소를 알리는 동장의 목소리와 함께 새마을노래가 크게 울리기 시작했다.. 더보기 1979-01-08 1979년 01월 08일 월요일 요 몇 일 겨울다운 추위가 다가와 모든 것을 얼려버렸다. 소도, 닭도, 개도 춥다고 밖으로 잘 나다니지 않는다. 소는 겨울이라도 아침에 소죽을 묵고 햇빛이 비치면 마구간에서 나와 거름짜리에서 햇빛을 쪼이는데 요 몇 일은 마구간에서 주구장창 나오지도 않고 소죽끼리고 남은 열기를 조금이라도 더 느껴보려는 듯이 마구간 안에서만 얼렁대고 있다. 닭들도 저녁에 잠잘 때만 올라가는 마구간안 뒤쪽 우에 메달려있는 휏대에서 아침에 내려왔다가 마구간안에서 소하고 신경전을 좀 벌이다가 마구간 근처 소죽끼리는 감부석 근처에서만 뻗치고 다닌다. 그리고 엄마는 아침에 평소보다 더 일찍 일어나서 부석에다가 굼불을 땐다. 날이 추워져 밤에 방이 더 빨리 식어버려 새벽이 되면 우리도 모르게 조금씩 조.. 더보기 1979-03-04 1979년 03월 04일 일요일 우리집 대문 바로 앞에 선남면에서 다리를 건너 동암1, 2동을 거쳐 취아대, 방아실, 명포로 이어지는 신작로가 있는데 그 너머로 너른 들이 있다. 그 신작로와 논 사이에는 물문에서 시작하는 작은 도랑이 논과 길 사이에 나란하게 꼬불 꼬불 내려오다가 우리집 앞을 지나고 동암1동을 거치고 계속 내려가다가 앞내끼와 선남냇가가 만나는 미나이에 다다르면 이윽고 없어진다. 많은 양의 물이 흐르지는 않지만 동네 앞 너른 들의 마을 쪽에 있는 논들의 농사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도랑이다. 빨래터가 있는 물문에서 물이 내려오기 때문에 여름이든 겨울이든 항상 어느 정도의 물이 흐르는 것이다. 이 물을 이용하여 우리 집 대문앞에 있는 논에 물을 대어 겨울방학 때 씨게통을 타고, 봄에는 못자리도.. 더보기 1980-07-15 1980년 07월 15일 화요일 어제는 큰 누나 월급날이었다. 엄마말에 의하면 큰 누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다고 한다. 중학교는 면에서 다녔고, 집안 형편이 안 되는 누나의 친구들이 대구로 가서 공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할 때, 큰 누나는 고등학교를 읍내로 갔다. 거기서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니까 상업반을 선택해서 일반과목과 더불어 부기, 주산, 타자 등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큰 누나는 지금 읍내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큰 상점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다. 호미부터 전자계산기까지 이것 저것 팔지 않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만물상가계다. 나는 거기를 한 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큰 누나 말로는 하루에도 엄청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많은 물건을 사기 때문에 사장님은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이다. 그래서 .. 더보기 1979-11-23 1979년 11월 23일 금요일 어제는 저녁 먹고 원임이하고 희숙이 누나집에 놀러갔었다. 아랫방에서 우리끼리 화투를 치고 놀다가 별 재미가 없어서 테레비가 있는 큰 방으로 갔다. 그 방에는 번쩍 번쩍 자개가 박힌 큰 장농주위에 14인치 작은 테레비가 서랍이 두 개 달린 나즈막한 선반위에 올려져 있고 아랫목에는 저녁 밥할 때 데워진 바닥이 식지 않도록 이불이 깔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지매는 다른 집에 놀러 갔는지 없고 숙영이 누나 혼자 비단을 하고 있었다. ‘ㄴ’자 형태로 생긴 비단틀에 올라 앉아 왼손은 비단을 잡아 한 점 한 점 바늘처럼 뾰족한 비단틀 코에 끼우고 오른손으로는 실이 감긴 비단실꾸리를 아래에서 위로 돌리며 두 번씩 적당한 힘으로 척 척 당겨서 매듭을 만드는 작업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런데 .. 더보기 1980-06-23 1980년 06월 23일 월요일 우리 마을에는 다른 동네처럼 집에서 키우는 개들이 많이 돌아다닌다. 대부분이 똥개들이고 풀어놓고 키우는 개들이지만, 우리는 어느 집에서 키우는 개인지 다 안다. 매년 복날이 되면 여러 마리가 없어지기도 하는데, 나는 집에서 키우다가 정이 든 개를 우째 잡아 묵을 수 있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작년 봄에 동수집에서 키우던 개를 동수 아부지가 약 한다꼬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매놓고 두들겨 패서 잡았다. 학교 갔다오니까 개가 감나무에 매달려 있는 거를 보고 동수가 눈이 벌게져서 울었는데 운다꼬 저거 아부지한테 머라케있다. 개가 암만 맛있어도 그렇지 집에서 키우는 개는 안 묵었으마 좋겠다. 테레비를 보마 개를 방안에서 키우기도 하던데 그거는 우째 키우는지 모리겠다. 똥하고 .. 더보기 1981-12-11 1981년 12월 11일 금요일 어제 저녁에는 오랜만에 된장국대신 밥상에 고기국이 올라왔다. 늘 그렇듯이 고추가루를 넣어서 색갈이 벌겋고 조금 매운 맛이 나며 밭에서 나는 파, 정구지, 무시, 씨래기 등 온갖 나물들을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넣고 물도 많이 넣어서 양을 한 것 늘린 대신에 고기는 조금 들어간 그런 고기국이지만 나에게는 오랜 만에 맛보는 고기국이라 정말 맛있었다. 이번에는 돼지고기나 소고기국이 아니고 닭고기국 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에게 물어밨다. “옴마, 오늘 지사날이가? 우째 고기국이 다 나왔노?” “그기 아이고, 날이 갑자기 추버서 그란지 알 잘 낳던 닭이 아침에 보이까 죽었더라꼬.” “그카믄, 이기 삐약이국이가?” 그때까지만 해도 엄청 맛있었던 고기국이 엄마의 그 한마디에 갑자기 .. 더보기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