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면' 태그의 글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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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남면

1980-02-10 1980년 02월 10일 일요일 1주일 뒤면 설이다. 그래서 엄마가 아침에 소죽끼리는 큰 솥을 깨끗하게 씻고는 거기에 우리보고 샘물을 퍼다가 가득 채우라고 했다. 나는 엄마가 와 그카는지 퍼뜩 알아차렸다. 설이 되기 전에 목욕을 시킬라꼬 그카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듯이 겨울에 목욕을 자주 하는 것은 어렵다. 테레비를 보면 도시에는 넓은 탕에 뜨겁은 물이 가득 차있는 곳이 있고 그곳에 들어가서 천천히 때를 불리고 밖으로 나와도 찬바람을 막아 주는 곳이 있어서 춥지도 않게 앉아서 때를 밀 수 있는 목욕탕이 있다카는데 나는 아직 가본 적이 없다. 우리는 겨울에 두 번, 많으면 세 번 까지도 목욕을 한다. 늦가을, 겨울이 오기 전에 한 번 하고, 한 겨울 설이 오기 전에 또 한 번 그리고 봄이 오고 날이.. 더보기
1981-05-18 1981년 05월 18일 월요일 우리집에는 암소가 한 마리 있다. 이름은 딱히 없고, 다른 집 소들에 비해 덩치도 작고 볼품도 살집도 별로 없는데 성질은 고약한 나이 많은 소다. 뿔도 오른쪽은 앞을 향해 살짝 굽어 이쁘게 나왔는데 왼쪽은 빼또롬하게 나와서 꼭 지 성질머리를 닮은 것 같다. 나이로 치면 나보다 많을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이 놈은 우리집 보물 1호다. 엄마가 가장 아끼는 놈이다. 커다란 소 마구간은 자기 집이고, 여름이고 겨울이고 우리가 지 먹을 거리를 장만해서 줘야 하고 겨울에는 추부까바 소죽도 끓여주고 옷도 덮어주니 우리 집에서는 그야 말로 사람보다 더 호강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도 한다. 쟁기로 논을 갈고, 써래질도 하고 짐실은 구루마도 끌기는 하는데 요새는 경운기가 .. 더보기
1982-01-19 1982년 01월 19일 화요일 오늘도 어무이는 깔비하러 갔다. 깔비는 소나무잎이 말라서 떨어진 것인데 불에 잘 타기 때문에 정지서 밥솥에 밥할 때나 가마솥에 소죽 끓일 때 항상 필요하다. 성냥 한 알에도 불이 잘 붙는 깔비는 보통 처음에 불을 붙일 때 많이 쓴다. 왜냐하면 불을 붙이기는 쉬운데 오랫동안 타지는 않고 쉽게 꺼져버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깔비하러 갈 때는 삭정이나 말라빠진 나무둥치 같은 것들도 있으면 같이 가져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마을 뒤쪽으로는 깔비하러 보통 뒷동산이나 미륵디산, 더 지나서는 신부동 인근까지도 가고, 마을 앞쪽으로는 앞내끼 건너 앞산이나 버드꿀이나 머음들 인근의 산까지 가서 하기도 한다. 그러나 뒷동산은 마을에서 가깝고 사람들이 많이 가서 나무도 별로 없고 깔비도 많이 없.. 더보기
1978-05-09 1978년 05월 09일 화요일 지난 몇 일 동안 열나고 토하고 몸이 아팠다. 읍내에 있는 병원은 워낙 멀어서 아직 가보지 않았고, 아랫동네 아저씨한테서 약은 얻어 와서 먹었는데 잘 낫지 않았다. 엄마는 걱정이 태산인듯했다. 희야가 먼저 나왔고 중간에 어무이가 딸 셋 낳느라고 10년도 더 있다가 아들인 내가 나왔는데 열 살도 안 되어서 이렇게 열이 나고 아파서 방에 이불 덥고 누워 있으니, 엄마는 큰 걱정을 했다. 동네 여기저기 사방팔방 아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묻고 다녔다. 아마도 엄마는 내 나이도 안 되서 열병으로 먼저 보낸 어린 아들을 기억속에서 떠올렸나보다. 그리고 마침내 어제 아침에 엄마는 굿을 하겠다고 했다. 내가 아픈 이유가 어떤 사악한 귀신이 집에 들어 왔기 때문인데 그 귀신을.. 더보기
1981-08-03 1981년 08월 03일 월요일 저번 주에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제 인채가 왔다. 인채는 대구가 집이고 군재희야 집이 외갓집이어서 여름방학 때마다 한 번씩 오는데 올 때마다 덕수이 누나, 희숙이 누나, 원임이 하고 놀지만 가끔씩 나도 끼어서 같이 놀기도 한다. 군재희야 집은 덕재희야 집하고 4촌간이고 우리하고 6촌인가 그렇고, 마을에서 우리 집하고 제일 가깝게 있기도 하면서 제일 가까운 친척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부지의 형제, 자매는 있었다고는 하는데 일본 식민지시대와 해방을 거치면서 다 어데 갔는지 소식이 없단다. 그래서 우리는 4촌이 없고 군재, 덕재희야 집이 우리 아부지하고 제일 가까운 친척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부지가 6.25전쟁이 끝나고 할매모시고 어렵게 지낼 적에 군재희야.. 더보기
1982-08-12 1982년 08월 12일 목요일 어제는 경주희야 하고 앞내끼에 불치기를 갔었다. 경주희야는 아재, 아지매하고 우리동네 뒷동산 중턱 제실옆, 오솔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검둥개 아지매집 바로 맞은편 위에 있는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고 버려진 작은 쓰레트 집에 살았었다. 작은 정지가 왼쪽에서 큰 방 쪽으로 하나 붙어 있고 곧이어 큰 방, 작은 방이 연달아 있으며 댓돌 하나를 지나 뜨럭에 올라서면 큰 방 작은 방을 이어 주는 사람이 걸터 앉을 만한 넓이의 길쭉한 모양의 마루가 길게 늘어져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여기 저기 이끼가 군데 군데 난 작은 마당 하나가 나즈막한 흙담으로 둘러 쳐저 있고, 대문은 새끼와 철사로 얼기 설기 엮은 오롱나무 두 짝으로 대신했는데 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대문이 슬쩍 닫겨 .. 더보기
1982-10-01 1982년 10월 01일 금요일 오늘은 추석이다. 당연히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고 어제 큰 방 웃목 한 쪽 구석에 바지와 함께 가지런히 놓아둔 흰색 스펙스 운동화를 신었다. 엄마와 어무이는 벌써 밖에서 제사상을 차릴 준비로 바쁘게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우리 동네에서 성주이가 일가 일곱 집이 지사를 같이 지내는데 우리 집에서 제일 먼저 지내기 때문에 설과 추석 때, 우리는 빨리 일어나서 이것 저것 해야 할 것이 많다. 엄마하고 어무이는 어제 준비한 음식이며 과일, 지사 지낼 때 사용하는 그릇 등을 준비하고 지사상위에 순서에 맞게 가지런히 놓아야 한다. 희야는 먼지가 쌓이고 낡아서 볼품은 없지만 우리 집에 하나 밖에 없는 8폭짜리 병풍을 꺼내서 먼지를 털고 차려놓은 지사상 뒤에 벌려 놓았다. 그리고 사람들.. 더보기
1982-01-08 1982년 01월 08일 금요일 오늘 아침에는 엄마하고 방깐에 가서 떡가리를 뺐다. 엄마는 쪼매 있으마 설이니까 미리 떡까리를 빼러 같이 가자고 했고, 나도 겨울방학이고 집에 있으면 심심하니까 같이 가겠다고 했다. 떡가리를 뺄라꼬 엄마는 어제부터 쌀을 큰 다라이에 넣고 물에 불려놓은 것 같다. 쌀 한 말은 되는 것 같은데 높지는 않지만 손잡이가 넓어 잡기가 편한 평평한 흰색 양철다라이에 불려 놓은 쌀을 담아 굵은 소금도 좀 뿌리고 해서 뜨럭에 놓아두었다. 엄마는 머리에 수건을 메고 새끼로 동그랗게 만든 따베이를 머리에 엊고 나한테 물에 불어 제법 무거운 쌀이 담긴 다라이를 머리에 이는 거를 도와 달라고 했다. 엄마는 다라이를 머리에 이고 휙 돌아서면서 장작개비 몇 개를 가지고 상모티 방깐으로 따라서 오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