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08월 03일 월요일
저번 주에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어제 인채가 왔다.
인채는 대구가 집이고 군재희야 집이 외갓집이어서 여름방학 때마다 한 번씩 오는데 올 때마다 덕수이 누나, 희숙이 누나, 원임이 하고 놀지만 가끔씩 나도 끼어서 같이 놀기도 한다. 군재희야 집은 덕재희야 집하고 4촌간이고 우리하고 6촌인가 그렇고, 마을에서 우리 집하고 제일 가깝게 있기도 하면서 제일 가까운 친척이다. 왜냐하면 우리 아부지의 형제, 자매는 있었다고는 하는데 일본 식민지시대와 해방을 거치면서 다 어데 갔는지 소식이 없단다. 그래서 우리는 4촌이 없고 군재, 덕재희야 집이 우리 아부지하고 제일 가까운 친척이 되었다. 그리고 우리 엄마, 아부지가 6.25전쟁이 끝나고 할매모시고 어렵게 지낼 적에 군재희야 아재의 여동생인 인채 엄마하고도 친동생처럼 사이가 좋게 지냈다고 했다.
인채엄마는 우리 엄마, 어무이 하고 어러븐 시절을 같이 보내서 그런지 가끔씩 와도 우리집에 와서 인사하고 엄마하고도 친하게 지내는 거 같고 나 한테 말도 거는데 나는 도무지 인채엄마 한테 고모라고 부르기가 민망하다. 그러니 인채한테는 말을 하기가 더 어렵다. 그런데도 여름방학 때 인채가 마을에 놀러 오면 가시나라서 내가 놀자고 하지는 못하지만 같이 놀고 싶기는 하다. 왜냐하면 인채는 참 이쁘다. 그래도 마을에서 미영이나 수임이가 쪼매 이쁜 축에 속하는데 인채는 야들하고 비교가 않된다. 우선 피부가 하얗고 얼굴도 조그마 한 것이 머리도 새까만게 덩거리 까지 길게 가지런하게 내려오게 길렀고 위에는 분홍색 반팔에 아래는 하얀색 무릅 까지 오는 치마를 입고 흰색양말에 딸딸이 처럼 생깄는데 발꿈치에 끈이 달린 분홍색 쌘달을 신었다. 나는 아직 이래 이쁜 아를 본적이 없다.
‘대구에 사는 가시나들은 다 이래 이뿌나?’
희숙이 누나가 우리집에 왔다. 원임이 하고 놀자꼬 왔는데 인채도 왔으니 큰 집에 가서 놀자고 했다. 희숙이 누나 큰 집은 군재희야 집이다. 인채가 나하고 같은 학년이고 해서 나도 같이 놀러 갈 거냐고 묻길래 그러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나는 가시나들 하고 잘 놀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누나들하고 인채하고 같이 노는 거를 다른 아들이 보면 나중에 가시나 하고 논다꼬 놀릴까바 쪼매 걱정도 되었다. 그래도 군재희야 집으로 갔다. 우리가 대문을 들어설 때 인채는 할배방이 있는 아래채에 붙어 있는 기다란 마루에 걸터 앉아 있었다. 마당에 놀고 있는 닭들을 보고 있었는데 손에는 달갈을 두 개 쥐고 있었다. 아마도 닭장에서 좀 전에 꺼내온 것 같았다. 희숙이누나는 벌써 인채하고 인사를 했을 것이고 원임이는 같은 여자끼리라 머라고 말을 했는데 나는 곁눈질로 슬쩍 보고 그냥 따라 들어갔다. 우리는 웃채 마루에 앉아 있었는데 아지매가 냉장고에서 수박을 짤라서 오봉에 담아서 가져왔다. 수박은 달고도 시원했다. 냉장고는 참 좋은 것 같다.
‘수박을 샘에다가 하루 종일 담가 놓지 않아도 샘에서 금방 꺼낸 것보다 더 시원한 수박을 먹게 해 줄 수 있다니…’
군재희야 집은 동네에서 제일 부자다. 우째 부자가 되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집도 좋고, 논도 많고, 냉장고도 있고, 아재가 타는 오토바이도 있다. 그래서 나는 군재희야 집이 부럽기는 한데 놀러 가기는 좀 그렇다. 그리고 내가 가도 놀 사람도 없다. 근데 덕재희야 집은 사촌간인데도 좀 못산다. 집도 작고 냉장고도 없고 논도 밭도 별도 없다. 그런데도 나는 덕재희야 집에 놀러 가는 거를 더 좋아한다. 놀러 가도 더 맘이 편하다. 우리는 수박을 묵고 냇가로 놀러 가기로 했다. 앞내끼 가는 길을 지나 방천에 도착한 뒤 곧바로 냇가로 내려 가서 물을 따라 위로 걸었다. 피래미와 먹지떼가 우리 앞으로 뒤로 빠르게 휙 휙 지나갔다. 그리고 물문 근처의 ‘ㄱ’자로 꺽어 지는 데까지 가서 물이 흐르지 않는 오른쪽, 햇볓에 반짝이는 큰 돌들 중 약간 편평한 놈을 골라서 그 위에 입고 온 옷을 벗어 두었다. 근데 누나들은 위에 짧은 반팔 옷을 입고 밑에는 반바지를 입고 물어 들어갔다. 나는 친구들하고 있을 때는 보통 빤스만 입고 물에 들어가서 노는데 오늘은 누나들 처럼 반바지를 입은 채로 물에 들어갔다. 왠지 그래야 될 것만 같았다. 인채도 누나들 처럼 비슷하게 옷을 입고 물에 들어 갔다. 냇가의 물은 보통 발목에서 깊어도 무릅정도 까지 밖에 물이 차지 않는데 여기는 ‘ㄱ’자로 꺽어 지는 곳이라 그런지 안쪽은 제법 허리까지 물이 오고 바깥쪽은 아에 물이 흐르지 않는다. 그리고 그 바로 위 방천에는 나무가 몇 그루 심어져 있는데 제법 커서 물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는 냇가에서 물에 들어 갈라 치면 꼭 여기로 온다. 우리는 물장구를 치기도 하고 물속에 머리를 담그기도 하고 그러다 물속에서 눈을 뜨고 돌맹이를 건져 올리는 놀이도 했다. 나는 아직 수영을 배워본 적이 없고 수영을 할 줄 모른다. 그래도 테레비에서 본 것처럼 멋있게 흉내도 내보았다. 어차피 물은 허리 정도 만큼이니 손해 볼일은 없었다. 그러다 가끔씩 내 손끝이 인채 발끝이나 팔이나 머리에 닿기도 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그냥 계속 놀았지만 실은 원임이나 희숙이 누나한테 닿는 거하고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한참을 놀다가 우리는 햇빛이 ‘쨍’ 하고 내리쬐고 큰 돌들이 ‘쫙’ 깔려있는 바깥으로 나왔다. 내리쬐는 햇빛은 뜨거웠지만 지금껏 물에서 놀던 우리에게는 몸을 덮이고 머리와 옷을 말리기에 더 없이 고마운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귀속에 들어 간 물을 없애는 것이다. 먼저 고개를 한 쪽으로 제끼고 그 한 쪽 발만으로 서고 다른 쪽 발은 들은 채로 제자리에서 ‘콩콩’ 뛰기를 여러 번 하다 보면 귀에 있는 물들이 쑥 빠져 나온다. 그 반대편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여전히 남아있는 놈이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두 번 째로, 햇볓에 뜨겁게 달궈진 돌들 중에 굵기가 적당한 얇은 돌을 몇 개 찾는다. 근처에 전부가 돌들이기 때문에 어렵지 않다. 그런 다음 머리를 한 쪽으로 제끼고 하나를 손에 쥐어서 귀에다가 살며시 대어서 1분, 2분, 3분 정도 그대로 있는다. 그러면 따뜻한 돌의 느낌이 귀와 얼굴에 쫙 퍼지고 귀속에 있는 물들이 빠져 나와서 하얗고 납작한 돌 위에 얼룩 덜룩한 그림을 그려놓는다. 그렇게 있으면 귀에서 꼭 ‘쏴 쏴’ 바다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한데, 나는 아직 바다를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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