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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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기_다음블러그

1981-05-23

1981 05 23 토요일

 

()태호는 나보다 위의 형이다. 태호의 형은 태식인데 태식이는 누나하고 동갑이다. 태호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나하고 친해서 이런 저런 놀이를 하면서 자주 같이 논다. 반면 자기 친구들하고는 친하지도 않고 같이 놀지도 않는다. 태호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는 가지 않았고 그냥 집에서 집안일을 도우면서 지낸다. 집안일이라고 해야 논도 없고 조그만 밭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전부여서 밭에서 이것 저것 잔일을 하거나 나무나 깔비를 하러 산에 가거나 집에서 키우는 토끼나 닭이나 오리의 먹이를 구해주는 정도뿐이다. 국민학교는 졸업을 같은데 글씨는 읽는다. 그래도 얼굴은 생기고 키는 나보다 훨씬 크고 힘도 훨씬 쎄다. 아마 자기 친구들은 전부 중학교에 가고 고등학교를 가는데 자기는 가서 친구들하고 친해지지 못한 같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동네 길가의 집은 내가 태어나던 해에 이사를 왔다고 한다. 전에는 동네 안에 있는 태호집 바로 뒤에 있는 순지희야 집에서 앞뒤로 이웃으로 살았었는데 우리 집하고 친하게 지냈었다고 한다. 우리가 동네 앞으로 이사 오고 집은 순지희야 가족이 거기로 이사를 것이라고 엄마가 이야기 했다. 그래서 그런지 어무이는 아직도 태호 아지매하고 엄청 친하게 지낸다. 그리고 태호 아재는 겉으로 보기에는 할아버지처럼 보이는데 우리 아부지하고 동네 친구란다. 내가 태호하고 친하게 지내는 것도 어무이가 거기에 하도 자주 놀러 가니까 나도 가끔씩 따라갔다가 태호하고 친하게 같다. 그리고 태호 아지매도 나한테 친절하게 해준다. 때마다 양푸이에 삶거나 구운 고구마나 감자, 강내이 찐거, 보리박상 등을 준다. 그래서 나도 집을 좋아한다.

태호집은 아직도 초가집이다. 동네에는 벌써 기와집이나 쓰레트 집이 많은데 태호집은 아직도 머리에 초가지붕을 이고 있다. 예전에 지붕을 바꿀 보았는데 지붕의 오래된 볏집을 벗겨내니까 속에 허옇고 굵다한 굼뱅이가 얼마나 많은지 깜짝 놀랄 정도였다. 근데 그거를 동네 아지매들이 와서 신경통인지 관절염에 좋다고 하면서 바가지씩 모아서 가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집이라고 해바야 짜리 조그만 일자형 건물인데, 왼쪽에 작은 , 중간에 작은 , 옆에 , 그리고 정지 이렇다. 앞에 작은 마당이 있고 마당 옆으로 해서 작은 미나리깡을 지나면 근처 집이 같이 사용하는 샘이 있다. 마당과 뜨럭 사이에는 댓돌 하나가 있을 뿐이고 뜨럭과 사이에도 마루가 없고 길쭉한 댓돌이 하나 있다. 방문을 열고 방문간에 앉아서 곧바로 신발을 신고 마당을 내다볼 있다. 비가 때면 비가 엄청 가깝게 느껴지는데 나는 기분이 좋다. 우리 집은 마루가 있어서 멀게 느껴진다. 그리고 방이 개니까 부석도 개가 있다. 작은 앞에 하나가 있고, 정지에 하나가 있다. 집에는 소가 없으니까 소죽을 끼리는 솥은 필요가 없어 작은 솥이 바깥 부석에 하나 걸려있고 정지에는 밥솥이 걸려있다. 정지는 불을 나오는 끄을음으로 온통 시꺼멓고 작은 찬장이 하나 있고 불을 때기 위한 삭정이나 깔비가 구석에 높이 쌓여있다. 벽에 쳐놓은 못에 쭈루미 걸려있는 크고 작은 냄비는 하나 같이 전부 시커멓게 그을려 있는데 거기에 번씩 꽁치나 고등어를 넣어서 끓인 된장국을 먹어보면 정말 맛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학교를 일찍 마치고 집에 와서 점심을 먹고 일이 없어 태호집으로 놀러갔다. 방을 둘러 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잠시 서있었는데 딴에서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태호집과 뒤의 순지희야 사이에는 흙담이 있고 거기에 좁고 길게 딴이 있는데 항상 그늘져서 어둠침침하고 꿉꿉해서 바닥에 이끼나 잡풀들이 많이 난다. 그래도 거기 비가 들이치지 않는 곳에 집안의 자질구레한 잡동사니와 , 호미, 괭이, 쟁기 등의 농기구들을 보관한다. 그리고 옆에 나무로 만든 닭장이 있는데 지난 번에 족제비가 와서 물고 가버렸다고 아지매가 엄청 원통해했다. 근데 태호가 딴에서 뭔가를 하면서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않았다. 그래서 내가 딴으로 가보았다. 닭도 없는 닭장 앞에서 내가 것도 모르고 닭장 안을 계속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나도 옆에 가서 닭장 안을 살짝 보았다. 나는 깜짝 놀랐고 태호는 어깨를 으쓱했고, 나를 향해 슬쩍 웃음을 날렸다. 거기에는 아주 올빼미 마리가 하고 들어 앉아 있었다. 완전히 어미 올빼미는 아니었지만 크기가 오리만하고 부리는 장닭보다도 컸고 다리뼈가 무슨 황소만하다고 생각되었으며 발톱은 무시무시했다. 나는 올빼미가 이렇게 몰랐다. 내가 흥분해서 이렇게 놈을 어떻게 때려 죽이지도 않고 혼자서 잡았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대답은 대단히 싱거웠다. 미륵디산에 나무하러 갔는데 조그만 바위 위에 혼자 앉아있는 저놈을 보아서 몽둥이를 들고 살살 다가 갔더니 도대체 도망 생각을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놈을 망태기에 담아서 집에 가지고 와서 비어있는 닭장에 넣어 두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을 믿어야 고민스러웠다. 어떻게 날개 달린 놈이 사람이 갔는데도 도망을 갔는지 궁금했다. 아직 새끼라 날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리고 태호에게 먹이는 주었느냐고 물어보았다. 전에 집에 와서 먹이를 시간이 없었고 집안에는 있는 먹이도 없다고 하길래 내가 개구리를 잡으러 가자고 했다. 우리는 동네 앞에 있는 논으로 가서 강아지 풀을 하나 뽑아서 입에서 춤을 잔뜩 모은 다음에 보송보송한 끝에 춤을 묻혀서 개구리가 있는 무논에 알랑거렸다. 있으니까 개구리가 와서 그거를 덥썩 물었고 나는 개구리를 머리 뒤로 빠르게 돌려서 땅바닥에 패대기를 쳤다. 이렇게 태호와 마리의 개구리를 잡았고, 집으로 와서 개구리 마리를 닭장에 넣어 주었다. 그런데 올빼미새끼는 개구리를 본체만체 하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개구리를 올빼미새끼가 먹기 좋게 찢어서 주기로 했다. 그리고 옆에 있던 낫으로 잡아온 개구리 다섯 마리를 꺼내서 먼저 다리를 찢었고 나머지 부분도 따로 닭장에다가 던져 주고 지켜보았는데 그래도 조금 움직이다가 눈만 꿈뻑꿈뻑 하기만 했다. 태호와 나는 어쩔 없이 나중에 보기로 하고 마당으로 나왔다.

올빼미새끼는 깨구리를 묵노?” 내가 말했다.

저거 어미가 없어서 그런가?” 태호가 대답했다.

자꾸 묵으마 굶어 죽을 낀데?” 다시 내가 물어밨다.

내일 다시 산에 조뿌까?” 태호가 다시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태호가 올빼미새끼를 집으로 가지고 썼던 집으로 만든 망태를 다시 닭장 옆에다 갖다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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