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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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일기_다음블러그

1977-10-21

1977 10 21 금요일

 

저번 월요일 대가에 사시는 이할배가 오셨다.

 

지난 7월에 아부지가 돌아가시고 우리집은 이것 저것 정리하느라 시끄러벘는데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고 엄마는 아랫방 옆에 달려있는 고구마나 감자나 오래된 옷가지 등을 보관하는 사용하지 않는 조그마한 방을 치우고 아부지 빈소를 만들었다. 그리고 아부지 사진을 가운데 하나 두고 양쪽에 촛불을 켜놓고 아침저녁으로 밥을 갈고 곡을 하는 같았다. 특히 손님이 오시면 빈소에 들르는데 그때마다 절을 하고 아이고 아이고곡을 한다.

 

이할배는 저번 월요일에 우리 집에 오셨으니 벌써 2주째 우리집에 머무르고 있다. 집은 대가에 있는데, 대가에는 일찍 돌아가신 이삼촌 외에 작은 이삼촌이 계시고, 이숙모하고 작은 이숙모 , 그리고 형들과 누나가 있다. 이할배는 이숙모하고 같이 살고 계신다. 작은 이삼촌은 같은 동네에 따로 살고 있다. 이할배는 엄마의 아버지는 아니고 어무이의 아버지다. 아부지하고 이할배 중에 누가 나이가 많은지는 모리겠는데 아마도 이할배가 많을 같다.

 

이할배는 흰색 두루마기에 검은색 갓을 쓰고 흰색 고무신을 신고 오셨다. 한여름은 아닌데도 더워서 그런지 팔과 목에는 얇게 쪼갠 대나무를 짜서 만든 속이 길쭉한 모양의 틀을 끼었는데 옷이 땀에 젖어서 팔에 붙지 말라고 하는 거란다. 나도 해보고 싶었는데 할배한테 이야기는 못했다. 우리 동네에도 두루마기에 갓을 쓰는 할배들이 있기는 한데 많지는 않다. 제사를 지낼 때나 마을 밖으로 일보러 나갈 때는 입고 나가는 같다. 우리 아부지는 두루마기는 입었는데 갓은 썼다.

 

나는 할배를 적이 없고 아부지가 할배같다는 생각이 든적이 많다. 그래도 아부지는 아부지니까 할배는 아이다. 그래서 이할배하고 친해져 보고 싶었는데 워낙 멀리 살아서 자주 만나보지도 못하고 해서 친해지기가 어럽다. 옆집의 성미는 할배하고 같이 사는데 친하게 지내는 같기도 하고 재밌게 지내는 같기도 해서 쪼금 부럽다.

이번에 이할배가 우리집에 온지 벌써 2주일이 되어 가고 내일 다시 대가로 돌아간다고 한다. 동안 내가 학교 갔다 오면 마당에서 새끼도 꼬고 있고, 고추도 말리고 있고 그런 잡다한 일들을 하고 지내고 있는 같다. 물론 우리가 학교 가고 없으마 엄마하고 어무이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하고 다른 집안일도 도와주는 같다. 이할배는 대충 우리한테 해주고 화도 안낸다. 그래도 이할배하고 친해지는 거는 어러븐데 그런지 모리겠다. 이할배가 우리집에 오고 나서 좋은 점이 하나 생깄다. 저녁 밥상에 평소에는 보기 힘든 달갈반찬과 고등어와 갈치구이도 가끔씩 올라 온다는 것이다. 어무이가 저녁에 솥에 쌀을 앉히고 불을 때서 밥을 하고 마지막에 뜸들일 밥그릇에 달갈을 세개 깨서 젓고 물을 조금 부은 후에 위에 얹어 놓으면 달갈이 익는다. 그리고 고등어와 갈치는 밥한다고 불을 때고 나서 남은 불에다 석쇠를 넣고 간이된 고등어나 갈치를 굽는다. 이거를 이할배 밥상에 올려둔다. 근데 이할배는 항상 먹지 않고 달갈을 숟가락 정도 퍼서 밥그릇에 얹거나 갈치를 토막만 젓가락으로 들고는 나머지는 접시째로 우리들 밥상에 올려 준다. 그러면 이제 우리도 맛있는 달갈과 갈치와 고등어의 맛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제 내일 이할배가 대가 집으로 돌아가신단다.’

그러면 나는 맛나는 반찬을 언제쯤 다시 맛볼 있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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