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울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충족하여야 할까? 발생학적으로는 두발로 걸어야 되고, 나머지 네 개의 손가락과 분리된 엄지를 가진 손으로 물건을 집거나 던질 수 있어야 되며, 도구를 만들어서 사용할 수 있고, 적당하게 큰 뇌의 용량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등이 내가 지금까지 배운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조건이다. 영장류에서 인간이 분리되어 나온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5 ~ 6백만년 전 즈음이라는 연구가 있다고 하는데 가히 나의 짧은 머리로는 상상할 수 없는 시간의 개념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 외에 개인마다 인간을 정의하는 나름의 기준이 있을 것이라 본다. 나에게 인간이란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수 있는가? 없는 가?로 정의되다. 다시 이야기하면 내가 나를 인식할 수 있는 뇌의 능력이 발현된 시점이 바로 인간이 되는 시점이 되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나라고 인식한다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낸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인 듯하다. 나(自我)와 나의 육체(自己)를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다. 나를 의식하는 것과 나를 인식하는 것은 다르다. 아마 대부분의 생명은 자신을 의식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한 발작 떨어진 곳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능력과는 차이가 있다. 불교에서 유명한 화두 중에 방금 사망한 나를 지켜보는 나를 상상하는 이야기가 있다. 생명을 다한 나의 육체와 그것을 바라보는 나, 무엇이 나인가? 그리고 현실적으로 유럽인들의 언어에서는 나와 나의 육체를 확실하게 구분을 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나의 머리가 나를 아프게 한다.’라든가 ‘내가 나를 결혼시킨다.’라는 언어를 실제 구사하고 있다. 아마도 종교적인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한국인들의 시각에서 이러한 언어를 이해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내가 나를 객체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은 나 이외의 다른 이들에게 나를 대입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바로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능력이며 동시에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 되기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인간의 객관화 능력을 가장 잘 표시하는 것이 ‘거울’이 아닌가 한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로는 지금으로부터 8천년 즈음에 현재의 터키지역에서 돌로 만들어진 거울이 발견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의 학창시절을 생각해보면, 고조선시대를 규정하는 한 가지의 표시물로서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이라는 이름을 배운 기억을 떠올릴 수 있다. 정확하게 무슨 말인지 이해불가하나 마지막의 ‘경(鏡)’으로 보아 거울임을 알 수 있다. 아마도 청동거울일 것이다. 그리고 백제시대에 일본의 왕에게 칼과 더불어 거울을 하사했다는 이야기도 들은바 있다.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자신의 능력과 현재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잘 깨달아 왕을 섬기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거울의 의미는 ‘객관성’이다. 그리고 기원전 5백년, 우리나라에서는 고조선이 존재하고 있을 때, 그리스에서 쓰여졌다는 ‘이솝우화’라는 책에 ‘욕심 많은 개’라는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가 있다. 큰 고깃덩이를 입에 문 개가 물가를 지나다가 물에 비친 자신을 보았고, 그 고기를 빼앗으려고 입을 크게 벌려 짖으려다가 그만 고깃덩이를 물에 빠뜨리고 말았다는 것인데, 내가 보기에 욕심이 많거나 어리석은 탓이 아니고 객관화된 자신을 인식하지 못한 탓이다. 동물에게도 자기객관화의 능력이 있을까? 위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것은 인간만의 능력일 듯하다. 왜냐하면 거울이나 그 비슷한 것을 만들거나 발견하여 사용하는 동물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위에 비친 자신을 인지하는 능력을 가진 동물의 이야기마저 들은 적이 없다. 인간에 가장 가까운 영장류들 중 이러한 능력을 가진 부류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에게 거울은 ‘객관성’을 의미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주관성’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객관적인 모습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관적으로 해석을 한 후,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나의 모습을 뜯어고치고자 하는 욕구들이 폭발하는 듯하다. ‘객관의 주관화’현상이라 불러야 할 듯하다. 사회대중 일반이 원하는 모습의 전형이 만들어 지고, 자신을 그 모습에 적용시키려는 일련의 자세와 시도로서, 그 결과 타인들에 대한 자신의 우월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욕구의 표현이다. ‘정형화된 객관화를 향한 추종’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이 과연 우리사회에 바람직한 것인가는 논의의 대상이다. ‘수퍼맨’들이 가득한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이 오히려 ‘수퍼맨’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질 것이라는 상상은 단지 영화속에서만 가능한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모든 세상의 가치와 아름다움은 ‘다양성’에서 근거한다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자유’를 우리의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이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다양한 생김새의 인간들, 다양한 색깔의 동물들, 다양한 크기의 물고기와 식물들 그 결과 세상은 아름답다.
내가 나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는 이유는 그들과 같은 얼굴을 가지고자 하거나, 그들이 원하는 얼굴을 갖기 위함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갖기 위함이다. 나의 전 인생을 통하여 지금까지 내가 가꿔온 거울에 비친 나 자신의 모습이 나에게 어색함으로 다가올 때, 나의 인생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거울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