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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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잡설

비정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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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고민할 즈음인 90년대 후반에만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생소한 것이었다. 좋은 직장이든 아니든 그래도 학교를 졸업하면 곳은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나의 1 ~ 2 후배들이 직장을 구하는 시점부터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나와 가장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졸업 , 1년이 지나도록 직장을 구하지 못해서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모든 사람은 아니지만 시절 나에게 공무원이란 직업은 고리타분한 무엇이었고, 당시 유행하던 세상은 넓고 일은 많다 문구를 젊은이들의 가슴에 새겨 세계로 나가야 하는 것이 젊은 사람들의 책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후배는 지방직 9 공무원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다. 아마도 당시의 나는 무척 행운아 이었거나 아니면 무척이나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를 하고 있었던 젊은이 하나이었음에 틀림없다.

그사이 20 이상의 시간이 훌쩍 지났다. 내가 처음 입사했던 회사에서 나는 1년도 되지 않아 퇴사를 하였고 이후 나에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가 이상 그럴듯한 회사의 정규직 직원이 아니게 것은 15년도 되었다. 쉽게 이야기하면 평생 비정규직이다. 지금도 비정규직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제 나이에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없다. 우리끼리 이야기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처지이다. 어찌 어찌하여 지금하고 있는 일에서 중간에 짤리지 않도록 최대한 마치고 다시 다른 일을 알아 봐야 한다. 아직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있고 그들이 독립하도록 돌보아야 하는 책임이 나에게 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처가 인근으로 내려가서 내가 좋아하는 작은 마당 있는 집을 구해서 무엇이라도 하면서 살고 싶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비정규직 삶은 고단하다. 같은 일을 하고도 보상에 차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무의 연속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다. 제도는 노동자를 그룹으로 나누어 버린다. 예전에는 우리의 사회가 많이 가진 적게 가진 나누어 졌었는데, 현재는 많이 가진 정규직 노동자그리고 비정규직 노동자 나누어 진다. 예전에는 적게 가진 들이 연합하여 많이 가진 들에 대항하여 요구하고 쟁취하는 일이 가능하였고, 이를 통하여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지고 부의 양극화를 방지하는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런 정도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약간은 대립각을 세우면서도 타협을 이루어 나가는 모습이 오히려 긍정적인 모습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정규직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사이의 조장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은 사회정의의 실현에 이바지하며 앞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멋진 나라를 구축하기 위한 생산적 고민을 해야 때이지 가진 없는 노동자그룹이 갈등을 진행할 시기가 아니다. 갈등의 승자에게는 어떤 승리의 전리품이 기다리고 있는가? ‘많이 가진 들은 뒤에 서서 조용히 이를 즐기고, 이를 부추기며, 자신들의 최대한 축적하기 위하여 몰두하면서도, 사회적 정의의 시선이 자신들을 겨눌 없도록 교묘하게 언론을 지배하는 듯하다. 예전 중국에서 주변의 나라들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많이 사용했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술이 현재의 우리사회에 절묘하게 먹혀 들고 있다.

이의 결과로 부의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통계가 있어 사회적으로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한다. 또한 비정규직 정규직화 대한 정책에 사회적으로 불협화음이 빚어지는 것은 문제이다. 적어도 노동자들끼리의 갈등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동안 차별적인 대우를 받던 그들을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이 그리도 어려운가? 내가 아닌 그가 선택된 것에 대한 질투인가? 인간인 이상 질투가 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들을 겸허하게 받아 들이자. 이제 불공정한 시스템을 개혁하여야 한다. 20년이 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렵지만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어울려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이것은 정의롭지 못한 시스템의 문제이지 너와 나의 잘못이 아니다. 이를 자각해야 한다. 부처님은 모든 고통의 원인이 무명(無明)’이라 했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깨어있는 양심 행동하는 양심 강조했다. 좁은 나의 소견으로도 맥락이 통하는 무엇인가가 있는 같다. 조장된 갈등,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기만 논쟁의 그물에서 벗어나자. 그래야만 너와 , 아들과 딸들이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행복하고 인간다운 삶을 이어 있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바라는 변화의 지향점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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