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썸네일형 리스트형 장모님 전복순(장모님) 여사님,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했던가요? 사람의 일도 그와 같다는 것을 장모님을 뵐 때마다 느낍니다. 벌써 제가 장모님을 뵌 지 20년이나 되었습니다. 제 아들이 고3이고, 딸아이가 중3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각자에게 다른 속도로 흐르는 모양입니다. 저는 항상 그 시절 그 모습 그대로 이렇게 서 있는데, 제 아이들은 저렇게 빨리 자라나고 장모님의 허리는 그리 빨리 굽어지는 군요. 제가 처음 처가에 인사 드리러 가던 날, 버스에서 영순이와 다툰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집사람을 만나기 전 사귀던 여자에 관한 것이 발단이 된 듯합니다. 물론 집사람도 그녀에 대해 알고 있었기에 나는 그것이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집사람도 여자인지라 발끈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사려.. 더보기 형님_2019-10-31 형님 보시오. 오랜만이오. 어릴 적에는 ‘희야’라고 불렀고 결혼한 후로는 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나는 솔직히 형님이라는 호칭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소. 왜냐하면 형님과 나 사이에 갑자기 엄청난 거리감을 주는 그런 호칭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소.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따르는 것뿐 이었는데 결국은 형님과 나 사이에 형수님이 끼어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는가 보오. 형님이 첫째로 태어나고 13년 후, 나는 막내로 태어났소. 중간에 3명의 누나들이 태어난 후에 말이오. 형님은 집안의 대를 이을 맏아들로서 엄마, 아부지의 기대와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고 들었소. 나는 3명의 딸을 보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들로서 또한 집안의 귀여움을 차지하며 자랐소. 그리하여 형님과 나는 아들이라는 이유.. 더보기 엄마 엄마 보시오. 막내요. ‘그렇게 슬픈 날은 아니었다고 기억한다. 아주 청명하고 화창했던 어느 봄날, 꽃 상여를 타고 꽃 터널을 지나서, 세상에 나온 어떤 생명이라도 한 번은 지나가야만 할 그 길을 위해 길일을 택하신 것 같았다. 가시는 걸음이 어떠했는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보내는 자식들을 위해 끝까지 애쓰신 것만 어렴풋이 알 것 같다. 마지막 걸음을 좀 더 가볍게 해드리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러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시간이 지난 후에 나 역시 그 길을 따르겠지만, 그 순간 내가 느낀 이 마음을 내 아이들이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겠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첫 기일에 내가 잠시 혼자 써보았던 일기 같은 것이오. 마음에 드시오? 하기야 내가 엄.. 더보기 어무이_2019-03-09 어무이, 나요. 막내아들이요. 아부지하고 엄마는 벌써 우리 곁을 떠났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무이는 아직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아 참 고맙소. 비록 건강이 악화되어 홀로 생활을 할 수 없고, 집에서 어무이를 모실 수 있을 정도로 효자 아들이 못되어 어무이를 요양원에 모시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드리오. 내가 아무리 감동 깊은 편지를 쓰더라도 글씨를 읽을 수도 없고, 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어무이한테 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마는 그래도 어무이한테 하고 싶은 몇 자를 여기에 적고 싶소. 최근에 아주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았소. 싸리를 엮은 삽짝문을 배경으로 외갓집에서 외할배, 외할매 그리고 외삼촌, 외숙모, 이모들이 모두 같이 한 자리에 있는 그런 사진이었는데 거기 뒤줄 오른쪽 구석에.. 더보기 아부지_2019-01-30 아부지, 보시오. 내 기억에 아부지 한테 아부지라고 불러본 적이 없소. 요즈음 애들은 아빠라고 하거나, 아버지라고도 하는데 나는 아부지라고 부르고 싶소. 내가 클 때는 다들 아부지라고 불렀으니 나도 그렇게 부르고 싶은 거요. 아부지는 당연히 어릴 때의 내 모습이 선명하겠지만, 나로서는 도저히 아부지의 희미한 모습마저도 그려낼 수 없으니 참 안타까운 일이요. 그리고 지금은 제대로 된 사진도 한 장 남아있지 않으니 더더욱 그럴 수 밖에요. 아부지 돌아가시고 어무이가 몇 장 남은 아부지 사진을 태워버렸다는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소. 어무이한테 먼 잘못을 그리 많이 했소? ^^ 내 나이 일곱 살 때 아부지가 돌아가셨으니 나에게 아부지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는 당연한 거고 엄마도 아부지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으시더.. 더보기 영순_아내_2019-01-28 나의 아내, 영순, 보오. 그대에게 ‘아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하거니와 ‘해라체’가 아닌 ‘하오체’도 처음으로 사용해보니 참으로 어색하기 그지없소. 그러하더라도 ‘해라체’를 사용한다는 것은 더욱더 해서는 안 될 일로 여겨지기에 이 문체를 고수하겠소. 일상생활에서 그대를 ‘영순’으로 부르기도 했고, ‘순’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자네’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남들처럼 ‘여보’라고 불러보지는 못했구려. 아버지 없이 자라온 터라 아버지가 어머니를 어떻게 부르시는지를 배우지 못했을 뿐 더러 좋은 아버지와 좋은 남편이 되는 배움을 놓쳤다는 것은 나에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오. 그 영향이 곧바로 그대와 우리의 아이들에게 미쳤음을 부인할 수는 없을 듯 하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대와 아이들이 건강하게 내 곁에 .. 더보기 이인_딸_2019-01-27 이 인, 우리가 프랑스에서 살고 있을 때,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몇 일 후, 눈이 참 많이 오던 겨울날, 니 엄마가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갔다가 너를 낳았지. 생각지도 못했던 갑작스런 너와의 만남이 그렇게 우연하게도 어영부영 시작되었다. 니 오빠야가 세상에 나왔을 때는 내가 업무적으로 몹시 바빠서 니 오빠야가 설 연휴에 세상에 나온 것을 고마워했을 정도이니, 니 엄마가 퇴원하고 집에 온 이후에도 니 오빠야 곁에 있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니가 병원에 있을 때나 집에 있을 때에는 내가 시간이 많이 있던 시기라 적어도 1년간은 내가 너를 키운 것이나 다름없었지. 니 엄마가 나의 이 말에 동의를 할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니가 조금씩 커가는 것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것은 나에.. 더보기 이민_아들_2019-01-02 이 민, 보아라. 시간이란 참 오묘하구나. 내가 너를 아들이라 부르고, 니가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이 순간이 과연 내 인생에 올 것인지 나는 진정 상상하지 못했었다. 지금도 나는 너를 아들이라 부르는 것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단다. 나를 아버지라 부르는 너의 마음도 나와 같은지 궁금하구나. 세상에 준비된 아버지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만, 아버지를 느껴보지 못했고, 한 번도 면전에서 불러보지 못한 나로서는 과연 어떤 것이 올바른 아버지의 역할인지 배우지 못했고 또한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너에게 아버지로서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지 자못 고민을 많이 했지만 결국 답을 얻지 못하였다. 하여 내가 세상을 살아가는 그대로의 모습을 가식 없이 너에게 보여주는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 동안에는 아무런..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