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무이_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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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

어무이_2019-03-09

어무이, 나요. 막내아들이요.

 

아부지하고 엄마는 벌써 우리 곁을 떠났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무이는 아직까지 우리를 떠나지 않아 고맙소. 비록 건강이 악화되어 홀로 생활을 없고, 집에서 어무이를 모실 있을 정도로 효자 아들이 못되어 어무이를 요양원에 모시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우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 감사드리오. 내가 아무리 감동 깊은 편지를 쓰더라도 글씨를 읽을 수도 없고, 소리를 들을 수도 없는 어무이한테 보낸들 무슨 소용이 있겠소마는 그래도 어무이한테 하고 싶은 자를 여기에 적고 싶소.

 

최근에 아주 오래된 사진 장을 보았소. 싸리를 엮은 삽짝문을 배경으로 외갓집에서 외할배, 외할매 그리고 외삼촌, 외숙모, 이모들이 모두 같이 자리에 있는 그런 사진이었는데 거기 뒤줄 오른쪽 구석에 아부지의 얼굴이 보이고 앞줄 왼쪽 즈음에 어무이 얼굴이 보입디다. 생각에 외할배 환갑사진이 아닌가 싶더군요. 어무이는 갓난아이 하나를 팔에 안고 있는데, 아마도 나는 아닌 같고 희야가 아닐까 싶소. 오래된 사진이지요. 사진속에 아부지는 갓쓰고 두루마기를 입은 외할배보다는 젊어 보이지만 그래도 초로의 남자처럼 보이는데 어무이는 새색시 같이 보이더이다. 어무이도 저리 젊은 시절이 있었나 싶소. 어무이도 시절이 기억이 나시오?

내가 국민학교 다닐 적에는 여름방학 때마다 어무이하고 같이 버스를 번이나 갈아 타고 산길을 걸어서 외가에 가곤 했었는데 기억은 지금도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소.

 

들리는 이야기로 어무이는 이뻤는데, 어릴 어떤 병에 걸려서 고생을 많이 했고 들을 없게 되고 말도 못하게 되어 외할배가 마음 아파했다고 하더이다. 아마 그런 이유로 고단한 시절, 평범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시집을 가지 못하고 우리 아부지의 번째 아내로 왔겠지요. 아부지의 번째 아내로 어무이도 서글펐겠지만, 아이를 갖지 못하여 남편에게 번째 아내를 권해야만 했던 엄마의 속은 누가 이해를 있겠소? 흔히들 집안에 여자가 이면 항상 시끄러운 법이라고 하는데 기억에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던 같소. 물론 아부지가 돌아가신 이후의 기억만 내게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소. 아부지가 없으니 분이 서로 협력하여 다섯이나 되는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고 농사일 하느라 피곤에 절어 녹초가 되어 있으니 싸울 기력이나 있으셨겠소? 그래도 시절 엄마하고 어무이는 억척스럽게 농사를 지으며 집안을 건사하셨고 우리도 크게 모나지 않고 우애 있게 지냈던 같소. 물론 고통스런 기억도 돌아보면 아름다운 추억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소.

 

어무이 세대에 있어 여성들의 삶이란 요즈음 세대와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요. 식민지시대,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 가난한 시절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시절을 관통하여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억척스럽지 않으면 외려 이상한 사람이었겠지요.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무이는 주위에 항상 양보하고 친절하게 대하셨다고 들었소. 제대로 교육을 받지도 못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를 누구보다 바르게 깨달았던 분인 같소. 솔직히 교육을 받을 만큼 받았고 세상을 돌아본 나로서도 어무이가 살아온 세상에 내던져졌다면 어무이처럼 세상에 대처할 수는 없었을 같소. 우리 5남매는 엄마와 어무이의 세상살이를 보면서 그것을 은연중에 몸으로 체득하지 않았나 생각되오. 대목에서 나는 아이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을 없소. 은연중에 나의 세상살이를 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을 그들이 체득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세상을 헛으로 살아간다면 엄마, 어무이에게 아이들과 세상에 죄를 짓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어무이도 나이가 들어 다리, 허리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고 움직이지도 못해 요양원에 계시는 신세가 되셨소. 처음에는 나도 걱정을 많이 했었소. 혼자 자유롭게 마을에서 지내시다가 곳에 감금된듯한 생활에 적응을 못하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었소. 그러나 비슷한 조건에 있는 분들이 옆에서 같이 생활을 하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견디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소. 사실은 견디게 괴롭지만 자식들을 위해 지내시는 척하고 계시는지도 모르지요. 아마도 편이 가능성이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엄마가 임종즈음 병원에 계실 , 내가 멀리 있다는 핑계로 제대로 들여다 보지도 못하는 동안에 대구막내누나가 힘들게 엄마를 돌보아 드렸는데, 어무이가 요양원에 있는 지금도 막내누나가 어무이를 돌보느라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있소. 자식들이 많이 있어도 돌보는 일은 항상 막내가 도맏다보니 우리한테 불만이 많이 쌓여있소. 자기 부모를 공양함에 불평을 한다는 것이 어무이에게는 상상도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지요. 자기 아이들도 있고, 자기 시부모님도 있을 텐데 은연중 강압적으로 어무이를 돌보아달라고 하는 우리들이 막내에게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막내에게 미안하고 어무이에게 죄송스럽소.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이쁜 꽃가마를 타고 시집왔었다고 손짓, 발짓으로 나에게 이야기하던 때가 생각나오. 이제는 지나가 버린 젊은 시절의 어무이를 오래된 사진에서 보는 마음도 즐거웠소. 이제는 외할배, 외할매, 외삼촌, 외숙모 모두 돌아가시고 어무이하고 이모만 살아계시오만 분도 분들을 따라 가시겠지요. 오래 우리 곁에 남아 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소만 그게 어디 사람의 바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마음으로만 빌어드리리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집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들었던 노래가 생각나오.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 이제 나는 돌아서겠소. 억지노력으로 인연을 거슬러 괴롭히지는 않겠소. ~~~”. 연인의 이별을 노래하는 것인데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많이 듣고 싶어지더이다. 그런데 휴가 때마다 어무이를 보러 가면 노래가 생각나오. 그때 병원에 계시던 엄마의 모습과 어무이의 현재 모습이 중첩되어 그런가 봅니다만, 나는 노래가 반갑지만은 않네요. 부디 건강하게는 아니더라도 많이 아프지 말고 오래 오래 사시오.

 

막내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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