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07월 15일 화요일
어제는 큰 누나 월급날이었다.
엄마말에 의하면 큰 누나는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 했다고 한다. 중학교는 면에서 다녔고, 집안 형편이 안 되는 누나의 친구들이 대구로 가서 공장에서 돈을 벌기 시작할 때, 큰 누나는 고등학교를 읍내로 갔다. 거기서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되니까 상업반을 선택해서 일반과목과 더불어 부기, 주산, 타자 등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큰 누나는 지금 읍내 버스정류장 근처에 있는 큰 상점에 취직해서 돈을 벌고 있다. 호미부터 전자계산기까지 이것 저것 팔지 않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만물상가계다. 나는 거기를 한 번도 가본적이 없지만, 큰 누나 말로는 하루에도 엄청 많은 사람들이 와서 많은 물건을 사기 때문에 사장님은 많은 돈을 번다는 것이다. 그래서 큰 누나도 돈을 많이 버는지 물어 밨는데 말이 없었다. 그래도 큰 누나는 가끔씩 점심에 중국식당에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먹은 이야기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나는 그 맛이 진짜 진짜 궁금하다.
‘도데체 그 시커머죽죽한 것이 얼마나 맛이 있길래 테레비에서도 그래 마이 나오는지? 언젠가는 나도 먹어볼 수 있겠지?’
한 달은 지루하지만, 큰 누나의 월급날은 조금 특별하다.
큰 누나의 월급날이면 우리는 짜장면과 짬뽕은 아니라도 조금 기대를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큰 누나가 퇴근해서 저녁에 지폐가 가득 들어있는 누런 월급봉투를 꺼낼 때 옆에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아주 빴빴하고 깨끗한 천원 짜리 한 장을 쑥 꺼내서는 내 손우에 턱 올려주고는 점빵에 가서 제일 맛있는 과자를 천원 어치 사오라고 시킨다. 어제도 그랬다.
내가 내 돈으로 과자를 사먹어 본 적은 없다. 설이나 추석을 빼고 엄마한테 용돈을 받지 않으니 당연한 일이다. 버더꿀 사는 정현이는 용돈을 받는다고 하던데, 아마 우리동네에는 그런 경우가 없을 것이다. 그러니 친척들이 우리 집에 올 때 과자선물세트를 가지고 오는 날이면 맛나는 과자를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큰 누나의 월급날이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자를 마음껏 먹어보는 것이다.
어제도 저녁 묵고 내 손에 천원 짜리 한 장을 들고 원임이 하고 점빵으로 갔다. 묵고 접은 것이 엄청 많았지만 천원을 넘기면 안 된다. 그래서 고민 끝에 ‘사브레’, ‘코코넛크레카’, ‘웨하스’, ‘맛동산’ 한 봉지씩하고 ‘쿨피스’ 하나를 샀다. 원임이하고 이것들을 고르느라고 들었다 놓았다 하면서 30분도 더 점빵에 있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왔다. 이어서 방으로 들어와서 과자를 먹으려고 모두 함께 모여 앉았다. 그 때 큰 누나가 “야들이 참 맛있는 과자만 골라왔네.”라고 했다.
‘역시 큰 누나는 내가 맛나는 과자를 잘 고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군.’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 있는 원임이가 자기가 다 골랐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었다.
‘음~~ 저걸 한 대만 쥐어 박을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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