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05월 20일 일요일
오늘 대구에서 혼자 학교 다니는 태임이 누나가 왔다 갔다. 집에 올 때 마다 늘 그렇듯이 엄마하고 돈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거 같았다. 누나는 중학교까지 집 근처에서 다녔는데 제법 공부를 잘 했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 때가 되었을 때, 엄마는 누나가 마을의 다른 친구들처럼 대구의 기숙공장으로 가서 돈을 벌기를 원했다. 근데 누나는 엄마 몰래 대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시험을 쳤는데 대구여상에 합격했다고 한다. 엄마가 고등학교도 보내주지 않으려는 판국에 인문계학교는 생각조차 않았을 테고, 그나마 여상도 야간으로 지원했다고 한다. 낮에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밤에 학교를 다닌다 하면 엄마에게 조금이나마 변명거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나는 태임이 누나가 대구의 학교에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누나가 참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엄마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누나한테 갖은 욕을 다 퍼부었다. 학교를 갈라믄 방을 구하고 그 외에 학교를 다니기 위한 돈일 들낀데 엄마는 그거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엄마는 동네 친척누나들 중에 먼저 대구에서 자취하는 누나를 수소문해서 그 누나의 사글세방에 얹혀서 생활할 수 있도록 그 누나 부모님에게 부탁했다고 했다. 물론 사글세의 반은 지불하는 조건이다. 그 외에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물은 가방, 교복, 밥상, 천으로 된 옷장 등이 있었는데 전부 중고나 제일 싼 것으로 준비했다고 한다.
어제는 토요일이라 누나가 오후에 집에 왔다. 매주 일요일마다 집에 오지는 않는다. 완행버스를 타고 선남에서 내려서 집까지는 걸어온다. 아마도 누나는 돈이 필요한 것 같은데 엄마한테 제대로 이야기를 못한 것 같다. 어제 저녁에 슬쩍 이야기 했는데 엄마한테 또 욕을 얻어 들은 거 같다. 엄마는 오늘 아침에 집을 나가서 여기저기 아는 친척집을 몇 군데 들러서 약간의 돈을 마련했나 보다. 점심때쯤 돌아와서 누나가 다시 버스를 타러 선남으로 나가기 전에 약간의 돈을 쥐어준 것 같다. 그리고 누나는 양손에 엄마가 준비한 두 개의 바뿌제를 들었다. 오후 2시가 좀 넘어 대문을 나섰다. 선남까지 반시간은 더 넘어 걸어야 되고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한 시간쯤 걸려서 대구의 반고개에 내려서 다시 또 버스를 탄다. 그렇게 누나는 집을 나섰다. 나는 누나가 이렇게 나갈 때 마다 기분이 좋지 않다. 우리 집이 너무 가난한 것 같아 싫다. 우리는 그래도 동네 여기저기에 논이 몇 군데 있다. 구메, 수부꿀, 베르뜰, 망개, 중심애, 개울애 등이다. 큰 논들은 아니지만 논이 제법 있는데도 우리는 너무 가난하게 산다. 그 중에 하나만 팔아도 누나가 저렇게 축 처진 어깨로 집을 나서지는 않을 낀데…
엄마한테는 택도 없는 이야기겠지.
가슴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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