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06월 20일 토요일
오늘은 토요일이라 4교시 까지만 하고 집에 왔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아침에 학교가면서부터 오후에 머하고 놀까를 궁리하였는데, 어차피 오후에 소미로 가야 되는데 미륵디산에 있는 금굴에 들어가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전부다 그러자고 하였고, 이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하였다. 테레비 같은 데서 보면 꼭 나무로 횃불을 서너 개 만들어서 여러 사람이 나누어 들고 시커먼 굴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도 학교 갔다 오자 마자 횃불을 만들자고 약속을 하였다. 그리고 비상상황에 쓸 밧줄도 필요하고 또 괴물을 만났을 때 싸워야 하니까 몽둥이나 낫도 가지고 가자고 하였다. 횃불이 꺼질 거를 대비해서 집에 있는 후라시도 몇 개 가지고 가기로 했다. 집에 오기가 무섭게 우리 집 바깥마당을 둘러보다가 대문 옆에 말라빠진 대나무를 찾아서 한 발정도의 길이로 잘랐다. 그리고 못쓰는 헝겊을 찾아서 가위로 적당하게 자른 뒤에 대나무 끝에다가 칭칭 동여맨 다음, 철사로 다시 한 번 잘 감았다. 그리고 석유통에서 석유를 조금 빨아낸 다음 소주병에 담고 뚜껑을 단단히 닫았다. 그렇게 횃불을 준비하고 도장에 가서 조선낫도 하나 꺼내놓고 마지막으로 성냥도 준비했다. 그런 다음 밥을 물에 말아서 급하게 먹고 마구간에서 이까리를 푼 다음 소를 끌고 집을 나섰다.
금굴은 우리가 소미로 자주 가는 미륵디산 밑에 있는 굴인데 우리는 아직 한 번도 들어가본 적이 없었다. 테레비의 영화에서는 굴에 들어가면 무시무시한 괴물도 있고 함정도 많을 뿐 아니라 나중에는 엄청난 보물도 많다. 그래서 우리도 준비를 단단히 해서 오늘 괴물을 물리치고 보물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큰 기대를 걸고 미륵디산을 향해서 천천히 마을 뒷동산을 지나서 일렬로 길을 걸었다. 대, 여섯 마리의 소와 함께 우리는 미륵디산에 도착했고, 소들은 산 만데이 나무들이 많이 없어 훤한 데다가 이까리를 길게 해서 띠엄 띠엄 나무에다가 묶어 놓았다. 우리는 동굴탐험을 위해서 각자 준비한 것들을 손에 들거나 허리띠를 바짝 졸라 맨 뒤에 거기에 끼우고 동굴입구가 있는 산 자락으로 다시 내려갔다. 금굴은 산밑의 밭이 시작되는 곳으로부터 조금 위쪽에 있다. 산과 밭의 경계쯤에 있는 것이다. 비가 오면 물이 흘러 가기도 하는 작은 계곡 같은 곳의 맞은 편이다. 우리는 동굴입구에 모여서 자기가 가져온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석유병을 꺼내고 뚜껑을 열어서 준비해온 횃불에 조금씩 천천히 적셨다. 그런 다음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불이 붙자 마자 시꺼먼 연기가 확 올라왔다. 연기가 조금 지나간 뒤에 횃불로 동굴 입구를 들여다 보았다. 동굴은 입구에서부터 곧 바로 아래로 내 키 정도 푹 꺼져 있었다. 거기서 평평하게 안쪽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한 사람이 위에서 횃불을 가지고 있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아래로 내려가기로 했다. 동굴입구는 우리가 똑바로 서있어도 문제되지 않을 만큼 높았고 서, 너 명이 동시에 지나가도 될 정도로 넓었다. 몇 개의 횃불덕택에 동굴은 밝았지만 불꽃의 일렁임에 따라 그림자가 여기저기서 춤추는 것처럼 보여 조금 무서운 기분이 들었지만 표시를 내지는 않았다. 일단 우리가 아래에 다 모인 다음 한 발자국 들어가기 전에 앞에 무엇이 있는지 횃불로 살짝 비춰보았는데, 그 끝이 보이지는 않았고 몇 미터 후에 다시 왼쪽으로 꺽이는지 앞이 막힌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예전에 여기서 늑대가 살았다거나 6.25전쟁때 사람이 많이 죽어서 아마도 안에는 해골이 많이 있을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할매한테 들었다고 하는 놈이 있었다. 그러자 다섯 발걸음도 옮기지 않았는데 더 이상 우리의 다리가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상태로 우리는 잠시 멈췄고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퍼덕 퍼덕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동굴천정 안쪽에서 우리 쪽으로 날아오는 것이 있었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이 우리는 내려온 입구 쪽으로 뛰었다. 횃불은 바닥으로 던져졌고 두 발, 두 손으로 동굴을 나는 듯이 올라온 다음 입구를 빠져 나왔다. 우리는 동굴 앞 작은 계곡을 건너서야 한 숨을 돌리 고 뒤를 돌아보았는데 박쥐가 몇 마리 근처를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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