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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씨잡설

제사

제사(祭祀)

2020 11 14

 

작년 이맘때 어무이가 위독하다는 소식에 마음이 착찹하였다. 몸은 만리 떨어진 이국에 있는데 어무이는 숨이 경각에 달린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니 아들 입장에서 당연한 반응이었을 것이다. 이미 어무이의 시간이 오래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가슴이 저며오는 느낌을 어찌할 없었다. 결국 내가 비행기를 타기도 전에 임종의 소식을 들었다. 그날 이미 먼저 돌아가신 형에게 보낸 편지를 뒤적여 보았다. 2019 10 31일의 일이었다.

벌써 1년전의 일이다. 이제 1년이 되었으니 한국에 있는 형수와 조카는 제사를 준비할 것이다. 실상 내가 멀리 있으니 집사람이라도 가보는 것이 도리이겠으나 그렇게 하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다. 역시 한국으로 전화해서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함을 표현해야 하겠으나 역시 그러고 싶지 않다. 죽음을 앞두고 있던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에 대한 불성실한 보살핌에 폭발했던 가족간 갈등의 골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2~3년의 시간은 우리자신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있게 하였다. 우리는 시간 동안 형제, 자매라는 그물에 얽혀있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벗어버리고 처음으로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이해를 위하여 서로를 대면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물론 서로에게 실망스러운 모습들이었지만, 서로를 현실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도 생각한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도리를 기대하는 우리들의 기대를 외면해버린 것에 대한 서운한 감정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집에서 제사를 거르는 모습은 본적이 없다. 나는 그것에 대해서 별다른 의문을 가져 적이 없다. 이제 나는 이곳에서 그들에 대해 생각해본다. 당면한 순간에 어려움을 회피하던 사람은 이제 제사를 모시고, 가슴을 졸이고 아파하던 사람은 돌아가신 과의 기억을 곳에서 추억한다. 제사의 아이러니이다. 나는 유교주의자가 아니다. 귀신이 있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음식을 장만하고 이러저러한 격식에 맞게 차려진 제사상을 향해서 정해진 시간에 번의 절을 한다. 그리고 얼른 상을 접고 차려진 음식을 나누어 먹는다. 돌아가신 분을 위한 잠시 동안의 회상이 곁들여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나에게 있어 제사는 종교적 행사가 아니며, 타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그들이 정해준 행위를 연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 내가 행위를 계속 해야 하며, 행위를 하는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 내가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가? 그렇지만 내가 돌아가신 분을 즐겁게 또는 가슴 아프게 기억하는 방법은 많이 있다. 엄마, 아부지 세대에는 그들만의 방식이 있었지만, 나의 세대에는 나만의 방식이 있겠다.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제사(祭祀) 권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들의 시간과 여력이 허락될 ,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 나를 기억하고 추억하라고 당부하고 싶지 않다. 죽은 이는 사라지는 것이 당연하고, 살아있는 이의 기억에서도 서서히 멀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자연의 법칙이다. 죽은 이를 강제로 세상으로 끌어내는 일은 자연의 법칙에 위배된다.

어제는 아주 오랜만에 꿈을 꾸었다. 어느 여름날에 엄마하고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 꿈이었다. 어떤 시시한 일이 있었던 듯한데 자세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어무이가 돌아가신 1년즈음, 4년전에 돌아가신 엄마와 단둘이 옛집 큰방에서 낮잠 자는 꿈을 꾸었다. 기억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때가 되면 슬그머니 가끔씩 모습을 살짝 드러내는 같다. 기분 나쁘지도 않고 슬픈 기분이 드는 것도 아니다. 엄마를 다시 보아서, 엄마의 체취를 다시 느껴서 기분이 좋을 뿐이다. 나이 일곱 돌아가신 아부지에 대한 느낌이라고는 어느 겨울 두꺼운 솜이불 밑에서 같이 잠을 느꼈던 서늘함뿐이었던 나는 어제 엄마하고 잠자는 꿈을 꾸었다. 이제 후에는 어무이하고 둘이 잠자는 꿈을 꾸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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