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sieur LEE 2020. 7. 7. 19:13

1982 08 06 금요일

 

오늘은 친구들하고 물문에서 놀았다.

 

물문은 동네 앞을 휘둘러 흐르는 앞내끼가 시작하는 곳에 동네쪽으로 위치해있다. 동네 앞들을 보호하기 위한 앞내끼 방천이 선남냇가까지 연결되어 있고, 물문은 동네 앞들이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땅속에서 흘러나오는 물을 동네 앞들을 세로방향 일직선으로 가로질러 선남냇가까지 연결되어 있는 도랑에 물을 사시사철 흘려주어 농사를 지을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동네 앞들은 넘어 들을 휘감고 흐르는 앞내끼 보다 바닥의 높이가 낮다. 동네 어른들 이야기를 빌리자면 앞내끼는 예전부터 있었던 하천은 아니란다. 원래는 성산쪽에서 내려오던 물이 앞산 밑으로 흘러 내려와서 미나이를 거쳐서 선남냇가로 합쳐졌다고 하는데, 진짜인지는 나도 모른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동네 앞들에서 농사를 지으려면 물이 필요했고 바닥이 들보다 높은 앞내끼에는 여름 가뭄이 들때면 물이 적게 흐르거나 말라 있을 때가 많으니 농사에 필요한 충분한 물을 대줄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네에서는 물문을 만들었던 같다. 물문은 우선 앞내끼 방천 바로 , 동네 앞들이 시작되는 곳에 있는데 논바닥을 2~3미터 깊이로 파고 직사각형 모양으로 옆으로도 정도 넓이로 파서 위로도 3미터정도의 사각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을 성냥갑모양으로 쌓아 올린 모양이다. 그러나 앞면에는 아무것도 채워 넣지 않아 면이 뚫린 콘크리트로 만든 성냥갑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속에는 땅속 3미터 정도의 깊이에서 지름 1미터 정도의 둥근 구멍이 반대쪽인 앞내끼를 향하여 뚫려있다. 길이가 얼마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여기에서 사시사철 차갑고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 나온다. 아마도 냇가를 흐르던 물이 수량이 많지 않아 땅속으로 스며들더라도 냇가 바닥을 뚫어 놓은 구멍으로 다시 나오는 같다. 그리고 흘러 나온 물은 콘크리트 박스 안쪽을 채우고 다음 밖으로 나오는데 바로 이곳에 동네 빨래터가 있다. 크지는 않지만 무릅깊이의 물이 중간으로 흐르고 2~3미터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빨래방망이 질을 하기에 좋을 정도의 넓고 평평한 , 3 또는 4개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늘어져 있다. 여기를 우리는 물문 또는 빨래터라고 부른다. 물이 나오는 문이거니와 빨래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물문안에는 깊이와 넓이가 2~3미터 되는 공간에 차고 맑은 물이 차있고 가끔은 피래미와 송사리도 보인다. 오늘도 아침부터 뺑구집에(뺑구집은 물문 바로 방천에 있다.) 옷을 벗어 놓고 뺑구하고 심이하고 빤스만 입고 물문에 들어갔다. 위에서 보면 별로 깊어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면 키보다 훨씬 깊고 수영도 못하는 나는 혼자 들어가기가 무섭다. 그래서 물문에서 때는 항상 동네 ~들하고 같이 간다. 그러다 보면 들에서 일을 마치고 점심 먹으로 가기 전에 여기 와서 씻고 가는 아저씨들도 보이고, 급한 빨래를 하러 오는 동네 처자들도 보이고 가끔은 동네 아지매를 따라오는 우리 또래의 여자애들과도 마주치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물문에서 슬그머니 나와서 쏜살같이 뺑구집으로 가버린다. 아무래도 여자애들 앞에서 빤스만 입고 노는 거는 쑥스럽다.

우리는 주로 낮에 여기서 노는데 동네 아지매들은 주로 밤에 여기서 논다. 저녁 먹고 여러 명이 모여서 세수대야 같은 거에 비누나 수건 같은 것들을 담아 가지고 후라시를 하나씩 들고 물문으로 가는 것이다. 집에서 목욕을 할라카믄 물을 길어 와야 되고 목욕통을 준비하는 것이 여간 번거로운 것이 아니니까 밤에 빨래터에 모여서 목욕을 한다. 물론 물문안으로 들어가는 거는 아니지만 빨래터에는 무릅깊이의 차고 맑은 물이 항상 흐르니까 빨래돌에 앉아서 비누로 머리를 감고 몸을 씻을 있다.

어제 밤에도 뺑구집, 작은 방에서 ~들하고 놀고 있는데 물문에서 여자들이 목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졸졸졸 흐르는 소리 대신에 찰방 찰방 바가지로 덮어쓰는 소리와 히히덕 거리며 자기들끼리 속삭이며 웃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중에서 우리 또래 동네 여자아이의 목소리도 들리는 것이다.

우리 나가보까?”

내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물문 뒤에 가만히 숨어 있으면 보일끼다.”

뺑구가 이야기했다.

만일 들키는 날에는???”

동수가 이야기했다.

그래, 가지말자.”

심이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