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잡설

부모

Monsieur LEE 2020. 5. 22. 04:59

부모(父母)

 

토요일 주말을 맞아, 아주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그렇듯 동네를 바퀴 돌려고 집을 나섰다. 밤을 보낸 , 밖으로 나가서 신선한 아침공기와 따뜻한 햇살을 쬐지 않고 숙소에 머무르면 본능적으로 나는 머리가 지끈거림을 느낀다. 아마도 궁벽한 시골출신이라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부터 몸에 베여있던 습관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운동화와 짧은 바지에 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숙소 뒤쪽 오르막길을 올라서 프랑스대사관 앞을 지나 내리막을 끝까지 내려간 다음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천천히 걸어서 분수대가 있는 로터리를 건너 양쪽으로 고급물품들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이 모여있는 거리를 지나고 있었다. 이곳도 코로나19 인해서 대부분의 가게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고 약국과 식품을 판매하는 가게만 드문드문 열려있었다. 그런 이유로 평소 같으면 좋은 옷차림을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채우고 서로 어깨를 부딪히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지나고 비싼 차들도 차도에 가득하여 항상 차량의 정체가 빚어지는 곳이다. 그리고 세상 모든 번잡한 거리가 그렇듯이 여기 저기서 구걸을 하는 사람들이 길목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는 시절이 수상하여 인도에는 지나는 사람이 거의 없고 차도에도 갓길에 주차되어 있는 차들만 듬성듬성 보일 차도는 텅텅 비어있는 지경이었다. 쓰레기를 처리하는 트럭만이 고약한 냄새를 내뿜으며 간간이 지나고 있었다. 아들이 용돈을 아껴서 나에게 사준 이어폰을 귀에 꽂고 강렬한 햇빛 속의 산책을 즐기던 나는 오히려 이런 상황이 나쁘지 만은 않다고 생각하면서 은행의 현금인출기가 설치되어있는 곳을 지나고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건물에는 입구로 올라가기 위한 서너 개의 계단이 있었는데 그곳에 아주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있던 사람이 서로 기대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은 거리에서 구걸을 위한 좋은 자리였던 모양이고 항상 명의 걸인들이 지나는 사람들이나 현금을 인출하러 사람들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연출되는 장소였다. 습관처럼 왼쪽, 오른쪽을 둘러 보던 그들이 자연스럽게 나의 시야에 들어왔다. 나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내가 있던 곳으로부터 걸음 , 바닥을 향했다. 평소에도 구걸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나는 얼른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피해버린다. 오늘도 평소와 다르지 않게 곁눈질로 슬쩍 그들을 살피고는 앞을 지나왔다. 그런데 그들은 초라한 행색의 젊은 부부처럼 보였는데 그들은 손을 들어 나를 부르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를 쳐다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무 말없이 서로 기대어 남자는 바닥에 앉아서 무릎 위에 팔을 올리고 위에 턱을 머리를 숙이고 땅바닥을 쳐다보고 있었고, 여자는 옆에서 힘없는 머리를 들어 허망한 시선으로 삐딱하게 하늘을 쳐다보는 중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그들 앞을 지나왔는데 숙소에 돌아 오는 내내 장면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고, 돌아 후에도 계속 장면이 계속되어 뭔가 찜찜한 기분이 계속되었다.

내가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한국으로 돌아 ,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아 청주에 있는 아주 작은 원룸아파트에서 해를 보낸 적이 있다. 5년만의 귀국이었기 때문에 나의 주머니는 거의 비어있었으며 직업은 금방 구할 없었다. 인터넷 구인구직 사이트를 통해서 여기저기로 이력서를 미친 듯이 보내어 보았지만 기다리던 소식은 빨리 오지 않았다. 집사람은 푼이라도 벌어볼 욕심으로 아침 일찍 카드회사 아르바이트를 가고 아이들은 어린이 집이며 유치원으로 가고 없는 집에 하루 종일 머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오전에는 성심껏 예의 이력서 전송작업에 몰두하고 오후에는 간단한 점심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 경우가 많았다. 짧으면 시간, 길면 세시간의 산책을 즐기는 것이다. 즐긴다고 표현하지만 공허한 기다림을 달래려는 작은 몸짓이었던 듯하다. 오전의 일이 늦어져서 오후 늦게 집을 나서는 때도 있었는데 정해놓은 목적지도 없이 터벅터벅 무작정 걷다 보면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가 집으로 방향을 틀어 걷다 보면 상점으로 가득 거리를 지나게 된다. 고급식당, 족발집, 옷가게, 신발가게, 전화기 판매점, 서점 많은 가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그런데 중의 , 웬만하면 앞을 지나고 싶지 않은 가게가 있었다. 통닭 튀기는 냄새를 항상 구수하게 풍기는 ㅇㅇ치킨집이었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아이들이 그렇듯 우리 아이들도 튀긴 통닭을 좋아했지만, 지갑 속에는 원짜리 지폐 장이 없어 치킨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ㅇㅇ치킨집을 그냥 지나쳐 아파트에 도착해서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 ,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잠시 동안의 시간에 엘리베이터의 거울처럼 맑은 안전문에 비친 흐릿한 모습을 보게 된다. 나는 일부러 왼쪽으로 발짝을 옮겨서 비친 모습을 피해버린다. 그러고도 멋쩍어서 시선을 바닥으로 떨구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

오늘 아침 내가 보았던 서글픈 표정의 젊은 부부는 서글픈 하루를 그리 보내고 어린아이들이 기다리는 자신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갔을 것이다. 돌아가는 , 손에 통닭 마리 들고 갔을까? 코로나19 사막처럼 황량해져 버린 거리에서 그들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