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씨잡설

먹방

Monsieur LEE 2019. 12. 16. 16:56

먹방

 

유투브(Youtube) 먹방 난리란다.

먹방이란 아마도 먹는 것을 보여주는 방송 줄임말이 아닌가 한다. 외국에서 근무하는 나도 한국의 소식, 음악, 스포츠 등을 접하기 위해 유투브(Youtube) 제법 이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나는 남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그것을 먹는 모습을 하릴없이 쳐다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런 즐거움에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은 듯하다. 어찌되었든 그것은 개인 취향의 문제라고 본다.

먹는 행위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들이 자신의 생명연장을 위하여 하여야 하는 필수 불가결한 행위다. 다시 말하면 본능적인 행위이다. 거기에 즐거움 이라는 감각이 더해져 있다. 어쩔 없이 해야만 하는 행위임에도 즐겁지 않으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예를 들어, 학창시절 어쩔 없이 해야만 했던 공부를 올려보자. 다행스럽게도 조물주께서는 먹이활동에 즐거움을 덧붙여 주셨다. 관점을 조금 달리하면, 초기인류의 여러 조상들 중에서 즐겁게 먹이 활동을 하는 종만이 살아 남아 오늘날 우리에게 이르렀다고 가정할 수도 있겠다.

생명의 먹이활동은 다른 생명의 소멸을 의미한다. 생명의 희생이 다른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아마도 우주의 법칙이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행성이 작은 행성들을 포섭해서 행성이 되고 은하가 작은 은하들을 취하여 은하가 되는 그런 법칙과 대동소이 것이라 생각된다. 헌데, 이것이 아무리 우주에 걸친 만고불변의 진리라고 하더라도 희생되는 생명의 입장에서 보면 고통스러운 일이다. 점에서 우리의 공감능력 또는 연민의 능력이 작동된다. 나는 모든 생명들이 이러한 능력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인간 또는 시각을 조금 넓혀서 영장류의 경우, 다소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러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생명의 연장을 위하여 희생되는 다른 생명에게 적어도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라고 생각된다. 백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발을 디뎠을 , 그곳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은 들판을 가득 채운 버팔로 무리들을 발견하더라도 일정기간에 필요한 만큼만 사냥을 하였다고 한다. 반면, 백인들은 단순히 사냥의 즐거움을 위하여 많은 생명을 희생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생명을 대하는 자세의 차이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아주 예쁘고 날씬한 여인이 맛나는 음식을 카메라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먹어 치우고, 다음날 다른 음식을 앞에 두고 카메라 앞에 선다. 사람들은 여인의 먹방 열광을 한다. 아마도 사람들은 매일 엄청난 양의 음식을 먹고도 자신의 미모와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있음에 대리만족하고 그에 열광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지점에서 우리의 열광이 과연 적정한가에 대하여 자문하지 않을 없다.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먹는 행위에는 아무런 이의도 없다. 하지만 음식을 쓰레기통에 곧바로 버리는 행위는 아니지만, 자신의 위를 비정상적으로 키워서 자신의 생명을 연장하는 필요한 이상으로 음식을 먹는 것에 무슨 의미를 부여할 있을까? 그것은 자신을 위하여 희생한 생명을 변기에 버리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적어도 우리에게 연민의 능력이 있고, 생명을 존중하는 사상이 내재하여 있다면 같은 행위는 자제되어야 함이 마땅하다. 지나치게 많은 음식을 먹거나, 그것을 빨리 먹는 행위가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것은 비정상적이다. , 끼니를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절을 경험한 우리의 선배세대들이 남겨준 유산일 수도 있지만, 이제는 이러한 단순한 포만감으로부터의 행복감은 극복되어야 한다. 많이 먹는 만족감 보다는 적당량을 맛있게 먹는 행복감으로 바뀌어야 때다. 드넓은 우주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의 작은 생명이라도 귀하고 귀하다. 이는 우리 자신을 위한 진실이거니와 지구상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야 하는 모든 생명들을 위한 금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