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_2019-10-31
형님 보시오.
오랜만이오.
어릴 적에는 ‘희야’라고 불렀고 결혼한 후로는 형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지만 나는 솔직히 형님이라는 호칭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소. 왜냐하면 형님과 나 사이에 갑자기 엄청난 거리감을 주는 그런 호칭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소. 엄마가 그렇게 하라고 하니 따르는 것뿐 이었는데 결국은 형님과 나 사이에 형수님이 끼어들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는가 보오.
형님이 첫째로 태어나고 13년 후, 나는 막내로 태어났소. 중간에 3명의 누나들이 태어난 후에 말이오. 형님은 집안의 대를 이을 맏아들로서 엄마, 아부지의 기대와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자랐다고 들었소. 나는 3명의 딸을 보고 난 후에 마지막으로 태어난 아들로서 또한 집안의 귀여움을 차지하며 자랐소. 그리하여 형님과 나는 아들이라는 이유로 3명의 누나들에 비해 큰 혜택을 입고 자란듯하오. 물론 형님은 맏이로서 집안과 부모님에 대한 큰 부담을 짊어 져야만 하는 삶을 본인의 의사에 상관없이 살아야 했을지도 모르겠소.
어린 시절부터 형님에게 말을 붙이는 것은 내게 좀 어려운 일이었소. 그래서 당연하게도 누나들하고 많이 어울려 놀았고 많은 시간을 보냈소. 생각해보면 형님과 같이 했던 기억은 거의 없는 듯하오. 내가 진해훈련소를 나올 때 엄마를 대신하여 마중 나왔던 기억이 형님과의 유일한 개인적인 기억이오. 그리고는 산소에 벌초를 하러 가거나 제사를 지내는 등의 약간은 공적인 일들을 같이 한 기억이 있을 뿐이오. 내가 성년이 된 후에도 형님과 가까이 지낼 기회는 많이 없었소. 아마도 형님의 성격 때문이기도 나의 부족한 노력 때문이기도 할거요.
2017년 12월 말 잠시 휴가를 보내러 올랐던 부산행 고속도로를 내리자마자 전해들은 형님의 갑작스런 비보에 집을 향하는 차 안에서 많은 생각을 했었소. 형님과 나는 여러 면에서 참 많이 달랐던 듯하오. 별로 슬프지도 않았소. 그냥 당황스러웠소. 단지 형님의 죽음과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내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라 솔직히 두려웠소. 그 몇 일 이후, 발인이 있는 날 슬픔과 함께 눈물이 나더이다. 슬프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 아니고, 두렵기 때문에 슬프다고 생각했소.
형님이 돌아가시고, 가족들 사이에서의 완충작용이 없어지면서 감정의 골이 더 깊어 졌소. 거동이 불편한 어무이를 보살피지 않는 형수에 대한 가족들의 원망이 원인이 되었소. 대구의 막내가 본의 아니게 그 모든 부담을 지게 되었고 형수뿐만 아니라 나머지 형제들에 대한 원망의 감정이 점점 더 심해졌소.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되오. 형님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이제 어무이의 건강상태가 악화되어 요양원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긴지 두어 달이 지나고 있소. 의식도 없어지고 음식과 물을 삼키지 못하니 인공적으로 삽관을 하여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사의 권유를 우리는 원하지 않는다고 하였다고 하오. 저도 동의를 하였소. 어무이의 죽음이 안타깝지만 그런 식의 생명연장은 서로에게 고통만을 줄뿐이라는 생각이오. 형님도 동의하는 바 일거요. 조만간 어무이도 돌아가실 거요. 슬픔에 잠긴 몇 일이 지나면 나는 또 일상으로 돌아갈 거요. 나를 기다리는 일터로, 나의 가족에게로.
한 가지 염려가 되는 것은 이번 일이 지나면 우리가족도 예전의 상태로 돌아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거요. 어무이가 살아계시다는 핑계로 휴가 때나 추석, 설이면 형수를 만나러 다녔지만 이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거요. 내가 형수를 만나러 가는 것이 그 누구도 행복하게 할 수 없고 오히려 불편하기 그지없는 일이 되고 말았소. 명절에도 갈 곳이 없는 북향민 같은 현실이 된 거요. 안타까운 현실이오.
국민학교 때 형님한테 위문편지를 쓴 이후에 처음 쓰는 편지가 이 모양이 되어버렸소. 그래도 나는 형님한테 이런 편지라도 쓰지만 형님은 평생 나에게 편지 한 장 쓰지 않았더이다.
살아 계실 때 나를 보는 형님의 시선이 어떠했는지 대충 짐작은 가오. 그런데 형님을 보는 나의 시선은 어땠는지 아오? 나의 아픈 새끼손가락.
의외의 대답일지도 모르나 형님에 대한 나의 진실한 감정이오. 이제 그곳에 계시니 모든 것을 다 아실 수 있으리다.
어무이 건강상태가 위중하여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형님에게 한 자 부치오.
그럼 잘 계시오.
어무이가 어제 저녁에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지금 출국을 준비하고 있소. 형님은 벌써 어무이를 만나 보셨소?
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