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정인이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2021-01-21
최근 입양된 이후 양부모로부터 지속적인 폭행에 시달리다가 세상을 떠나버린 채 24개월도 안된 정인이에 대한 국민적인 분노가 전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어떤 이는 정인이의 양부모를 악마 같은 사람들이라고 부른다고도 한다. 한편 우리사회에서 어떻게 이러한 비인간적인 일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문제의 제기로 연일 방송과 지면이 뜨겁게 달구어 지고 있다. 이 문제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첫째, 직접폭행을 행사하거나 그것을 옆에서 묵인한 당사자인 양부모에 대한 비난은 당연하다. 둘째, 그러한 폭행이 자행되는 것을 목격하고 주위에서 경찰에 신고를 여러 차례나 행했지만 묵살되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폭행으로 인하여 심각한 부상을 입고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갔지만 일반인이 보아도 폭행에 의한 부상임을 알 수 있을 것인데, 일반적인 질병으로 판정하였다는 정인이 담당의사의 행태도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넷째, 입양시스템과 양부모의 선정 전반을 관장하고 있는 기관에도 비판을 가해야 할 것이다. 위에 제기한 각 단계에서 저질러진 잘못들을 세세하게 분석해서 잘못을 저지른 담당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 외에도 그 잘못들이 발생하게 된 원인을 찾아서 제도를 고쳐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이러한 유형의 비판은 일반적이며 매우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이를 실행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알고 있다. 약간의 시간이 지나면 정인이 사건은 다른 문제들에 묻혀서 국민들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인데, 어떤 책임 있는 자들이 수년의 시간과 이 사건에 연루된 여러 개인과 기관에서의 압박을 견디며 이 일을 완수할 수 있겠는가? 이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이들의 비상식적인 책임감이 없고 서야 이루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사회가 끊임없는 진보의 길 위에 있다면 누군가는 해야만 할 일이다. 그에 덧붙여 국민들의 입양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한국전쟁 이후에 수 많은 전쟁고아들이 외국으로 보내졌고 이후에 우리사회는 그들을 잊었다. 반면에 어떤 국가들에서는 전쟁이 발생했을 때 아이들을 일시적으로 이웃나라에 보냈다가 전쟁 이후에 이 아이들을 다시 모국으로 데려와 국가와 사회가 책임지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 전쟁이 끝나고 벌써 두 세대가 훨씬 지났고, 경제상황은 세계의 상위권에 진입하였다고 하는데 아직도 많은 수의 고아들을 외국으로 수출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다. 진정 우리사회가 그 아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이 상황에서 미혼모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미혼모를 장려할 수는 없지만, 미혼모가 되었더라도 사회에서 이들을 책임져주고 삶의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을 대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인식의 전환이 꼭 필요하다. 그들 또한 우리 모두의 아들이고 딸들이다.
나는 이번 정인이의 안타까운 죽음을 대하는 우리사회의 분노를 직접 목격하면서, 하루 평균 일곱, 여덟 명이 노동현장에서 사망하고 그보다 수 십 배의 노동자가 부상을 당하고 있는 우리의 노동현실에는 눈을 감아버리는 우리사회의 행태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정인이의 안타까운 사건이 전국민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 버리던 때에 우리의 암담한 노동현장의 안전문제를 개선하기 위하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발의되었다. 그러나 기업에 대한 처벌조항이 초안에 비하여 심각하게 훼손된 채로 국회에서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결국 기업은 노동자의 안전에 소요되는 비용을 아끼려 노동자의 생명을 소비하는 정책을 계속 유지하게 되었다. 전국민의 80~90%가 노동자인 사회에서 어찌하여 이토록 노동자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는 풍토가 계속되는지 의문스럽다. 아무리 소수의 지배세력이 수 십 년간 자신들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펼쳐왔다지만, 이렇게 정보가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세상에서 노동자의 가치가 이처럼 외면을 받는 사회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우리 노동자들의 책임이라고 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는 우리자신들의 ‘노동’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는 명제가 ‘참’이라면 그 노동을 실행하는 ‘노동자’도 신성하다. 신성한 존재인 노동자의 생명을 몇 푼의 금전을 아끼려고 헌신짝 내팽개치듯 하는 기업주와 그들과 공모하여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 언론인들과 고위관료들은 정인이를 학대하여 죽음으로 몰고 간 양부모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위에서 언급한 악마는 이들을 지칭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들은 지난 수 십 년간 체계적으로 악마적 행위를 일삼아왔으며, 앞으로도 계속하여 그 행위를 지속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를 이번에 보여준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금번에 껍데기와 이름만 남아 혹자는 ‘재해기업보호법’이라고도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다. 우리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우리 스스로 우리를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자각이 있는 다음에라야 우리사회에서 ‘노동’과 ‘노동자’가 귀한 존재로 대접받을 수 있을 것이다.